세상에는 두 가지 여자가 있다. 핸드백 속이 깨끗한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
난 단 한번도 깨끗한 가방 속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게다가 175cm의 큰 키라 가방도 여행가방 수준의 빅백을 선호한다. 그런데 그 안이 개판이라니, 이건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물건이 빨려들어가서 필요한 물건을 찾을라 치면 내 팔마저도 그 블랙홀에서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다.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찬 엄청 큰 사이즈의 백이라면 당연 무게도 엄청나게 나가지 않을 수가 없다. 난 가끔 지하철이나 버스에 서서 한 손으로 내 백을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이걸로 충분히 근육운동이 되고도 남으리라 생각하곤 한다. (특히 왼쪽 그림의 끌로에 이디쓰는 가방 자체가 소 한마리의 통가죽을 홀라당 다 쓴 양 번개탄 한마리-고양이임-의 무게를 능가한다.들고 걸을라치면 식은땀이 날 정도. 저 백이 나왔을 때의 끌로에 수석디자이너였던 피비필로는 분명 새디스트의 성향이 있음을 확신한다. 새 수석디자이너인 파울로메림앤더슨 역시 그 뒤를 잇고 있는 듯.) 그럼 손안에 쏙 들어가는 클러치백으로 바꿔보지 그러냐고? 핸드백 속이 피난이라도 가는 봇짐꼴이 되어버리는데에는 사이즈는 상관없다는 걸 알아두길 바란다. 정말이다.
혹시나 정말 피난이라도 가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집 안에 나뒹구는 백 중 대강 하나를 골라잡고 뛴다 하더라도 생활에 큰 불편은 없을 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백안의 물건들을 크리에이티브하게 생활에 필요한 용도로 사용하는 방법을 고안해내긴 해야 하겠지만... 어쨌거나 내 가방 속은 정말 혼돈 그 자체여서 하다못해 남자인 내 애인조차 자기 물건을 내 가방에 넣어두기를 꺼린다. 내 핸드백에 하루이틀쯤 들어갔다 나온 물건들은 대부분 카오스에서 살아나온 용사같이 세상일을 겪을대로 겪은 닳고 닳은 (실제로도) 인상이 풍기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백속의 물건들끼리도 각자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듯.
쓰다만 립밤, 정작 펜은 없는 펜 뚜껑들, 뚜껑이 벗겨진 펜에서 흘러나온 잉크 자국들(가끔 글씨조차 쓰지 않았는데 내 손에 잉크가 잔뜩인 이유가 이거다), 가방마다 하나씩 들어있는 천식용 인헤일러, 캔디컬러의 알약들, 종류에 따라 최악의 디재스터가 될 수도 있는 터진 로션이나 연고들(치약도 있다), 가끔 펴보면 소비생활을 반성하게 하는 장점이 있는 영수증들 영수증들, 또 영수증들. 머리끈, 실핀 (사라지는 실핀의 미스테리가 약간은 풀리는 순간), 포장이 벗겨져 굴러다니는 껌조각들, 탐폰 포장지, 핸드폰 충전기, 정체를 알 수 없는 용기들(지퍼락같은), 고양이털을 떼기 위한 투명테잎, 고양이장난감용 쥐새끼, 빈 담배각, aaa사이즈 건전지, 두꺼운 메모장.... 늘 가지고 다니는 지갑, 핸드폰, 디카, 읽을 책, 아이팟, 필름카메라, 스케치북(이미 엄청난 양의 내용물/종종 노트북도)을 제외하고도 이런 것들이 상주하고 있다. 그것도 각각의 백마다 모두. 그러니까 어느 백을 옷장에서 꺼내 골라잡는다 해도 디폴트로 저런 물건들을 지닐 수 있게 되는 편리함이랄까!
나와는 다른 브리드인 핸드백속이 깨끗한 여자들의 비밀을 알게 된 건 대학교때였다. 어느날 나는 몸무게 40kg의 신경질적으로 가녀린 몸매와 목소리를 가지고 있던 한 여자애의 가방속을 들여다보고 그 비밀을 알게 되었는데, 그걸 알고도 여전히 이 꼴인 건 도저히 내가 해낼 수 없는 종류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핸드백속이 꺠끗한 여자들의 비밀이란 핸드백 속의 백, 또 그 백속의 백, 또 백, 또 백인것이다.
화장품은 화장품 가방에, 또 그 가방안에도 립스틱은 립스틱 주머니에, 브러시는 브러시주머니에. 화장품백말고도 펜이 들어있는 펜 주머니, 노트와 종이는 홀더에, 생리대와 티슈는 또 생리대와 티슈주머니에, 담배는 담배케이스에. 마치 구획이 딱딱 나누어져 있는 기능성 카메라가방처럼 핸드백 안에는 백의 세상이 또 펼쳐지고 있었던 거다. 아니, 이게 열고 열고 열어도 계속 들어있는 러시안 인형들도 아니고 립글로스라도 바르고 싶으면 핸드백을 열고, 화장품백을 열고 거기서 립스틱 주머니를 열어야 간신히 손에 쥘 수 있고 삼초간 립글로스를 사용하고 나면 거기의 열배도 넘는 시간을 들여 다시 주머니를 닫고 화장품주머니도 닫고 제 위치를 찾아 넣고 핸드백도 닫아야 했던 것이다.
중학교때부터 필통도 없이 가방 앞주머니에 펜을 잔뜩 쓸어 넣고 다녔던 (고무줄로 묶기라도 했으면) 나에게는 이건 우주선에 비치된 조종교본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 밖에. 우주선 조종을 그렇게 하지 않아 내가 우주미아가 되는 거에 비하면 핸드백 속에서 립글로스 하나가 핸드백은하계 "bag-드로메다"의 우주미아가 되는 것 정도는 충분히 참을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암소의 똥구멍에 어깨까지 손을 넣고 휘적휘적 자궁 검사를 하는 진지한 수의사 모양으로 어두운 핸드백 속의 디지털카메라를 (그리 작지도 않은데 찾기 힘들다) 찾느라 3분을 보내는 편을 선택하겠다.
ps. 언젠가는 분명히 번개탄이 들어있는 백을 들고 외출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번개탄이 들어있거나 없거나 내 백은 몇 키로를 육박하는 무게를 자랑하기 때문에.
ps. 조금 다른 주제이긴 하지만 유행한다는 이쁘다는 모든 온갖 it bag 들은 왜 그렇게 다들 무거운지 정말 여자의 고충이란 임신의 고통뿐이 아니라는 걸 모두 알아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