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김밥의 맛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김밥은 무엇보다 그 압도적인 크기를 첫번째 "맛"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마가레뜨와 빅파이의 중간정도?  아마 우리 반에서 제일 큰 김밥이었을거야. 한 줄을 먹으면 밥 두공기는 될 것 같은, 게다가 손도 크지 않은 엄마가 유난히 김밥을 말 때는 속재료를 잔뜩 넣는 바람에 늘 그런 사이즈가 되고 말았는데 맛도 사이즈만큼이나 푸짐해서  얄팍한 햄 대신 갈은 소고기를 달달하고 짭쪼름하게 볶아서 양껏 넣었던 게 그 비밀레서피가 아니었나 싶다.  

며칠 전 갑자기 이 김밥이 먹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엄마표 김밥- 난데없이 김밥을 싸내라고 하면 오천원 던져주시면서 맛있게 사먹으라고 하실테니 먹고 싶은 내가 말기로 결정- 그런데 김밥은 한 번도 말아본 적이 없는걸.

소풍날 아침, 잠옷 바람으로 달걀지단이며 시금치며 소고기를 김밥과 함께 손으로 집어먹던 기억을 떠올려 재료를 준비한다. 밥을 고슬고슬 지어서 (우리집 전기밥솥이 싸꾸려고물이라 밥맛이 완전 별로,바꿔야 할텐데-/김밥맛도 조금 망치고 말았다) 식초와 설탕 깨로 초밥을 만들어 식히고, 계란은 지단을 부쳐서 (통통하고 부드럽게 하려고 녹말물을 살짝 넣었다) 자르고, 단무지, 간장/설탕에 조린 어묵, 살짝 데쳐서 간한 시금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양념소고기까지 준비 완료. 역시 양은 전혀 모르겠어서 결국 나중에 달걀을 다시 좀 더 부치고 밥이 모자라 20분을 기다려 다시 짓는 일까지 발생했지만 어쨌거나 그럭저럭 9줄을 성공시켰다.  

이걸로 나의 첫 김밥이 완성-
하지만 아쉽게도 엄마의 맛은 안 나더라. 

그건 그렇고, 혼자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김밥을 말고 있으려니 그것 참 별로더라. 김밥이란 음식은 모름지기 새벽녘 방문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시큼한 초밥과 달콤짭짤한 재료냄새,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맡으면서 일어나 그 잠옷 바람 그대로 따끈함이 남은 갓 싼 김밥을 쪼그리고 앉아 슬쩍 집어먹는 맛인데, 달걀지단과 소고기를 킁킁킁 넘보고 있는 고양이들을 발로 밀어내면서 궁상맞게 혼자 앉아 이러고 있으려니 이건 영 기분이-

그러다 문득 엄마의 첫 김밥은 무슨 맛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내가 유치원을 가고 첫 소풍을 가면서 첫 김밥을 싸 보셨겠지. 나처럼 어쩔 줄 몰라하면서 계란이 모자라 계란을 더 부치기도 하고, 양념해 졸인 어묵이 한가득 남아서 그 후로 3일동안 밥반찬으로 먹어 없애기도 하면서.  

그러게, 엄마가 나만했을때의 음식맛은 어땠는지 새삼 궁금하다. 지금 내 나이면 유치원 다니는 내가 한창 귀찮게 할 때였을텐데.

먹어 보고 싶다, 지금의 나보다 어렸을 엄마가 날 위해 싼 첫 김밥.













PS. 식은 김밥은 달걀에 물을 조금 섞고 잘 풀어서 김밥을 담갔다가 후라이팬에 살짝 구우면 촉촉하고 맛있는 달걀김밥 완성.



by jjay | 2007/11/12 14:18 | COOK | 트랙백(3) | 핑백(1) | 덧글(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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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Log of Guss at 2007/11/13 00:28

제목 :
jjay님의 포스팅 중 이런 부분이 있었다. .....김밥이란 음식은모름지기 새벽녘 방문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시큼한 초밥과 달콤짭짤한재료냄새,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맡으면서일어나 그 잠옷 바람 그대로 따끈함이 남은갓 싼 김밥을 쪼그리고 앉아 슬쩍 집어먹는 맛인데.... absolute;width:9px;height:7px;background:...more

Tracked from Illusion Cha.. at 2007/11/13 07:52

제목 : 향수
엄마 김밥의 맛 에서 트랙백나는 우리가족과 친척을 죄다 통틀어서 아마도 가장 김밥을 좋아하는 사람일거다.밖에 나가서 출출하면 무조건 김밥집에 가고, 맛있는 김밥집을 소개받으면 좋아라 하면서 가서 먹는경우가 많다.심지어 돈까스를 먹으러 나갔다가 갑자기 김밥이 땡겨서 김밥만 두줄 먹고 온 적도 있다.기숙사방에서, 15인치쯤 되는 노트북 앞에 앉아서 저 글을 읽다보니까 갑자기 어머니가 떠올랐다.방금 기숙사에서 만들어준 타코를 먹고왔지만- 갑자기 어머......more

Tracked from wonjucho's m.. at 2009/04/10 17:23

제목 : 우유과자의 생각
고소한 참기름 냄새로 소풍날 아침을 열어주었던 별식 김밥이 싸구려 스낵으로 전락해버린 게 안타까운 사람입니다....more

Linked at 제목없음 at 2007/11/1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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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ini at 2007/11/12 14:42
미투.. ㅠ.ㅠ..
엄마가 이제 나이드셔서, 밥하시는것도 귀찮아라하시는데,
김밥이라니!! ^^;;!!!
저두 저희엄마표김밥 많이 사랑해요.. ^^
Commented by 뚜비두 at 2007/11/12 15:15
'김밥이란 음식은 모름지기 새벽녘 방문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시큼한 초밥과 달콤짭짤한 재료냄새,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맡으면서 일어나 그 잠옷 바람 그대로 따끈함이 남은 갓 싼 김밥을 쪼그리고 앉아 슬쩍 집어먹는 맛'! 저도 오래전부터 그 맛이 무척 그리웠어요. 아흑.
Commented by jjay at 2007/11/12 15:27
뚜비두/ 그런 날은 이제 안 오지 싶어요.....
Commented by 라엘 at 2007/11/12 16:20
아아아아 소풍날 새벽에 먹는 그 김밥! 다시 맛볼 수 없는 그 맛이네요. 흑흑.
Commented by guss at 2007/11/12 19:07
엄마의 첫 손맛은 아버지가 기억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경험하는게 제일 좋겠지만 불가능하니 한 번 여쭤보기나 해보세요 :)
Commented by dunkbear at 2007/11/12 22:24
김밥은 역시 소풍날에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이 최고죠!!! 아... 그리워라...
Commented by ranigud at 2007/11/12 22:45
헤에... 저희 어머니도 손은 작은데 이상하게 김밥크기가 압도적(?)이라서... 소풍가서 도시락을 열어보면 다른 애들의 김밥은 왜 그리도 이쁘던지... 그래도 엄마가 해 준 김밥이 제일 맛있었다는...
Commented by 에이니드 at 2007/11/12 22:58
달걀물 입힌 식은 김밥을 튀기는것도 좋아요. 느끼한맛도 있지만 라면국물이랑 같이 먹으면 고소한게 맛있어요.
Commented by 아람 at 2007/11/12 23:01
저도 이 글 읽고 어마에게 김밥 싸줘요!! 라고 했다가 사먹어 귀찮아 라는 소릴 들었답니다 ㅠ_ㅠ
저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네요.
Commented by jjay at 2007/11/12 23:03
라엘/네, 이제 다시는 맛볼 수 없겠지요 ? 후훗. 그런 게 있나봐요....

guss/ 후훗, 무뚝뚝한 저희 아버지가 기억하실리가 만무.... 혹은 기억하셔도 무뚝뚝하신 성격에 아무 말도 안 하실 것 같아오. 그래도 여쭤볼래요. 하하

dunkbear/ 정말 그런 느낌, 그런 맛은 다시는 재현할수없나봐요. 냄새, 맛
, 소리 전부 다 너무 포근한 기억이에요.

ranigud/ 후훗, 저희집 김밥이랑 비교해보고싶네요. 누가누가더큰가.

에이니드/ 홋 솔깃하네요.

아람/ 이제 어머니의 김밥은 웬간해선 맛보기 힘들죠.

Commented by mayfair at 2007/11/12 23:04
저도 엄마한테 김밥 싸달라고 땡깡 부리다가 고대로 독박 써서 제가 싸드렸던 게 지난주네요 ^0^;;;
그래도 옆구리 다 터진 걸 맛있게 드셔주셔서 괜히 뿌듯했답니다^^
Commented by 자용 at 2007/11/12 23:12
소풍날 두단짜리 도시락에 김밥을 쌓아 대문을 나서면 어찌나 맘이 든든하던지 그길로 외계인에게 납치되어도 이거먹으면서 잘 살수 있을것만 같은 기분
Commented by 핀쿠 at 2007/11/12 23:19
마지막 ps의 김밥은 저도 자주 애용하는 김밥재활용법^^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나이트엔데이 at 2007/11/12 23:21
진짜 맛있어보이네요..아 배고픈데 제대로 염장
Commented by 동호 at 2007/11/13 00:25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음식점을 하셔서 항상 바쁘셨지요. 급식이 없었던 초딩시절 어머니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셔서 제 점심 도시락으로 항상 정성스레 1000원을 쥐어 주셨죠. 육계장 사발면에 만두 넣어 먹을 수 있게.... 소풍 가는 날이면 맛난 허술한 김밥을 만들어 주셨죠... 그 때는 그게 왜 그리 야속 했는지.... 지금 조금이나마 나이를 먹다보니 그때의 어머니의 미안함이 느껴지네요. 어머니도 하기 싫어서 그렇게 해주신게 아닐텐데 항상 투정만 부렸으니.....
Commented at 2007/11/13 00:3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실피 at 2007/11/13 00:45
이오공감에서 보고 들어왔습니다..:D

어머니의 첫 김밥은 너무 아련한 추억이되서 기억나지 않지만,
저의 첫 김밥은 기억이 납니다.
자르지도 않은 긴 김밥을 어머니께서 한입 두입 드시고는 조용히 직접 김밥을 말아 드셨었지요.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난 지금, 전 제가 지은 밥을 먹지 못합니다.
너무 맛이 없어서요(...)

말없이 (정말로 맛없었으리라 추측되는)김밥을 드신 어머니의 애정이 생각나네요.
하핫..ㅜㅠb

마지막의 김밥 활용팁 감사합니다.:D
Commented by jjay at 2007/11/13 00:52
동호/ 부모님의 마음은 지나봐야 알아야한다는 게 정말 야속하고 서운해요. 왜 다 그런걸까요.

실피/ 좀 지나면 맛있을거에요. 어머니가 드신 김밥도 맛있었을걸요! 정말로요!
Commented by winbee at 2007/11/13 00:58
어머니에게는
김밥보다 김장 테크닉좀 전수받고 싶습니다 정말.
Commented by 핀치히터 at 2007/11/13 01:00
왠지 눈물이 나는군요. ㅠㅠ 저도 엄마표 김밥이 땡깁니다.
Commented by jjay at 2007/11/13 01:24
winbee/ 김치는 너무 먼 당신-

핀치히터/ 바보같지만 네줄쯤 싸고 있더라니 저도 그냥 그랬어요. 눈물이... 그런가봐요. 핀치히터님이 여자분이신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여자는 더 한가봐요. 나이들며 느끼는 하나하나가.
Commented by 핀치히터 at 2007/11/13 02:35
반쯤 예상하셨겠지만 여자입니다. ^^ 이게 바로 '여자가 되간다'라는 걸까요. 아님 그냥 생활에 찌들어 아줌마가 되가는 건지도... 처음 온 블로그에서 강한 감동을 느끼고 갑니다. ^^
Commented by 은혈의륜 at 2007/11/13 07:46
....기숙사 방에서 블로깅 하다가 이글을 보니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어머니가 해주신 밥이 먹고싶어요....
Commented by 玄雨 at 2007/11/13 08:08
자취하다보니 그냥 어머니가 해주신 평범한 밥상 하나가 무지 그리워집니다. 감동 받으며 잘 읽고 가요~ ^^
Commented by 라엘 at 2007/11/13 09:38
오옷 이오공감! 추카!
Commented by 화류 at 2007/11/13 11:08
..흑 이제는 집에서 김밥먹고싶어!라고 얘기하면 천원을 던져주시지요...orz
Commented by 라자리노 at 2007/11/13 11:27
아하핫; 어머니표 김밥 .. 세상 어느것 보다 맛있을 꺼예요.. ㅎㅎ
언젠가 어머니께 이런 걸 물은적이 있어요. 아무리 어머니 방식을 따라해도 그 맛이 안난다고 어머니가 하신 게 제일 맛있다고 어머니도 어머니가 하신게 맛있으세요? 했더니;
어머니도 엄마가 해준게 제일 맛있데요^^;; 외갓집가서 외할머니가 해주시는 게 제일 맛있데요.. 저는 외할머니가 해주시는거 보다 어머니께서 해주시는게 더 맛있는데 어머니는 당신이 하신거 보다 외할머니가 해주신게 더 맛있데요.. 생각하면 재밋죠?
Commented by layil at 2007/11/13 13:26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에요..잘읽었습니다^^
Commented by 플루토 at 2007/11/13 13:40
엄마의 김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죠...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도라야 at 2007/11/13 14:37
ㅋㅋ 우와~ 소풍갈때 아침일찍 일어나셔서 준비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이 나요~
다시 옛날로 돌아갈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갑자기 엄마가 말아주던 김밥이 먹고 싶어요~~~ㅠㅠ
Commented by 무한의주인 at 2007/11/13 18:04
ㅎㅎ 울 어머니는 10년만에 김밥을 싸주시겠다고 소매을 걷어 붙이셨는데... 단무지를 물에 헹구는 과감함을 보여주셨죠~ 10년만의 어무니 김밥은 싱거웠습니다! ^^ 어렸을적 소풍때 어무니 김밥이 쵝오였죠~
Commented by terioops at 2007/11/13 23:06
눈물이 찔끔 허허;;

엄마표 김밥 정말 맛있었는데 말이죠ㅋ
Commented by 파닭 at 2007/11/14 00:38
엄마가 지금 김밥을 싸주셔도 어릴 때 먹은 그 맛은 안 나는 것 같아요. 소풍을 갔을 때 애들과 옹기종기 모여서 '또 김밥이야?'라고 하면서도 맛있게 해치우던 그 맛. 가방 안에서 달그락 거리던 도시락통 소리때문에 점점 고조되는 기대감과, 온도때문에 적당히 차가워진 김밥의 조화[웃음]
그래도 엄마표 김밥은 제가 싼 것보다 훨씬 맛있다는 거:9
Commented by 미소수프 at 2007/11/14 08:32
철 들었네~ 담엔 김치김밥을 만들어달라구!!
Commented by Shoo at 2007/11/14 10:34
마지막 부분 읽는데 코끝이 찡하네요.. ^^
Commented by 신채소 at 2007/11/14 21:58
아이구.. 왜 갑자기 눈물이 나는지..^^;;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WILDBLAST at 2007/11/15 16:05
지금의 나보다 어렸을 엄마가 날 위해 싼 첫 김밥.
<-이 마지막 글이 뭉클했습니다. 정말 생각나네요. 어릴 때 소풍갈 때마다 보물처럼 소중했던 어무이의 김밥.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windily at 2007/11/18 00:07
왠지 눈물이 날것같아요.
자꾸만 잊어만 가는 소중한 그 순간들이 너무나도 아쉽네요.
Commented by manim at 2007/11/18 02:38
아...갑자기 저도 엄마표 김밥이 너무 먹고 싶어지네요.
새벽에 일어나면 엄마가 말아놓은 김밥보고 좋아서
눈치보며 꼬다리들만 낼름 낼름 주워먹곤 했었는데...
나이 먹어서는 엄마는 김밥싸서 등산가시고
느즈막히 일어나 나 먹으라 남겨둔 2줄의 김밥을
썰지도 않고 통채로 우걱우걱 먹는 그 맛이 생각나요.
김밥은 안썰고 그냥 먹는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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