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씨가 발정인지 거의 일주일째다.
본능이 살아있는 여자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녀석들이 발정때가 되면 얼마나 사랑과 손길을 갈구하는지 머리가 절레절레 흔들어질 정도로 알고 있을 거다. 너무 "다정하다"못해 들이대고, "들이대다" 못해 "질척인다."
우리집의 고양이들을 한동안 지켜봤던 - 혹은 지금 이 페이지에서 뒤로 한 다섯 페이지까지만 훑어본 -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듯이 우리집의 유일한 여자고양이인 씨씨는 우리집의 아웃사이더이자 메탄형제의 표적이다.
씨씨는 마치 메탄형제가 저열한 족속이라 여왕인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았고, 메탄형제는 저 싸가지없는 누나를 어떻게든 밑으로 들어오게 만들고 싶어하던 것이 우리집의 역학관계.
다른 애들을 너무 싫어한 나머지 옛날 디오게네스처럼 그림자만 드리워도 하악하악 거리기 일쑤였으며, 그러는 씨씨가 재밌는데다가 유일한 여자애라는 전혀 남자답지 못하며, 성불구(중성화한 우리애들) 다운 이유로 씨씨를 괴롭히고 들볶고 살살 건드려왔던 것이 메와 번개탄의 일상이었다. 씨씨는 목이 쉴 떄까지 하악거리고, 애들은 발이 닿도록 씨씨를 쫓아 뛰어다녔다.
그런데, 두둥- 모든 것이 바뀌었다.
탄이와 메가 앞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화를 내고, 펀치를 날리고, 하악을 양동이로 퍼부엇던 씨씨가 앞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끌어안고 그루밍을, 그림자가 비추기만 해도 달려가 목을 끌어안고 또 그루밍을 서억서억 하는 씨씨로 변했다는 사실.
그동안 씨씨를 어떻게 하지 못해 안달이던 번개탄은 이제 그 입장이 바뀌어버렸다.
단 1초도 자기를 가만두지 못하고 응으응 으으응 거리며 그루밍해대는 씨씨에게 질려버리고 말았던 것. 잠시 누워 혼자 사색에 잠길라 치면 어느새 나타난 씨씨가 자기 궁뎅이를 핥고 있고, 씨씨를 피해 구석진 곳에 몰래 숨어있어봤자 홍길동처럼 스윽- 소리없이 나타난 씨씨가 또 귓속을 뚫으려는 양 그루밍을 하고 있지않은가. 씨씨가 자신에게 하악거리지 않고 펀치를 날리지 않는 건 좋지만 이건 아니잖아- 표정을 짓고 나를 돌아본다. "업보야, 이 바보야. 너도 당해봐야 알지." 라며 나는 고개를 스윽 돌린다.
이 덕분에 번개탄은 이제 짜증까지 늘었다. 끼야야야양 꺄아아앙 끼기기긱 조금만 귀찮으면 성질을 있는대로 부린다. 평생 두번 정도 했던 (그것도 온리 청소기에게만 날렸던) 하악도 이제는 콤보 연속으로 날려주신다. 나와 오빠가 끌어안고 어화둥둥을 해도 1분 정도는 참아주었는데 이제는 끌어안자마자 끼야아야양 짜증을 부리며 달아날 궁리만 하게 변했다. 이게 모두 씨씨때문이다.
번개탄은 속으로 차라리 이 년이 예전으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씨씨 괴롭힌다고 매일 나한테 궁뎅이 두들겨 맞아도 그때가 낫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씨씨를 괴롭혀 궁뎅이를 얻어맞고 화장실에서 꺼이꺼이 벽보고 울고 있었어도 그때가 낫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한번 잘 생각해 본다.
사실 어쩌면 씨씨는 발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동안 메탄형제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어느날, 매일 나와 소파에 늘어져 섹스앤더시티와 유사 연애영화를 보던 보람이 있었는지 문득, 유레카! 밀고당기기의 법칙을 깨닫고는 자신이 반대편에 서기로 맘먹었을지도 모른다. 발정인 듯 연기하며 그동안의 원한을 갚아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 한 번, 두둥!
예전 번개탄을 보던 씨씨의 눈빛과 하악을 씨씨를 보는 번개탄의 눈에서 발견하면서 씨씨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거고, 왠지 똥도 잘 나오고 있을거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나도 번개탄에게 말은 안 하지만 맘 저 깊은 속에서는 조금 통쾌하기도 하니 씨씨의 계획은 정말 성공 성공 성공. 갑자기 내 옆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나한테 찰싹 붙어 있는 씨씨년이 대견스러워보이기 까지 한다.
물론, 저 위의 사진은 "엄마, 나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몸이 마음과 따로 놀아. 내가 왜 이런 애 배를 베고 누워있어야 하는거지? 근데 일어날 수가 없어, 뭔가 계속 날 끌어당겨" 라고 하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과연 이 모든 것은 씨씨의 계략인것인가, 아니면 그녀조차 괴로워하는 슬픈 본능의 한때인 것인가.
이 모든 게 씨씨의 연기이고, 계략이라 믿고 싶다.
배우자.
조만간 씨씨에게 그루밍당하며 짜증내는 번개탄의 동영상을 찍어 올리고야 말겠다. 기대하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