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가 그리운 전직광고쟁이, 오늘도 <트리플>을 기다려

지난주 토요일 <트리플> 1회부터 6회까지 연속재방송을 온종일 보았다고 고백하겠다. 
드라마의 드 자에도 별 관심이 없지만 1회를 보면 어쩐지 끝을 보고 말아야 하는 이 이상한 고집 덕을 봤다고도 해야겠다. 이것 참 생각보다 재밌더라. 이선균의 지나가듯 주절거리는 애드립같은 대사들도 웃기고 (김 싸서 먹어, 이거 너무 웃겼다.), 꼬마 여자애의 연기도 재밌다. 이정재는 노, 지만 여기의 이정재는 나름 딱딱하고 프라이드 강한 AE 에 어울린다. 성북동의 송스키친이 대박났겠구나, 부럽다, 라며 나중에 내 카페는 어찌되려나 생각도 했다지. 애인님 광고에 세트로 넣어주시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거야 어쨌던 당연하게도 나의 관심은 이들이 그리는 광고계 생활 (나 광고회사 다녔다.)
환상으로 미화되거나 밑도 끝도 없이 어이없는 장면들도 많았지만 - 예를 들어 CD 인 이선균이 회사 구석골방에서 편집을 하고 있다거나, AE 국장이 지나가면서 너무 빠르지 않냐니까 반초 뺄 거라고 한다거나, 고등학교 동창 사이인 AE이정재와 CD이선균이 그렇게 친하다거나, 등등등 - 반초 빼겠다고 말하는 대사나, 제작비 7억 다 받았다고 (세상에 7억이라니, 유럽에서 대체 며칠을 촬영한걸까, 댓편은 찍었겠다.) 만세 부르며 자랑스럽게 들어오는 모습이나 (세상에, 이런 훌륭한 AE가 있다니!) 애용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대사같은 건 이 사람들 꽤 인터뷰도 하고 조사도 했구나 싶은 꽤 리얼한 장면들.  AE와 CD와 아트가 부띠끄를 만들어 놓고는 온갖 대형 피티에 단독으로 참여했다는 건 어이가 없지만, 그리고는 다시 전단지부터 시작한다라니 그나마 다행. 이 바닥이 소문이 얼마나 빠르고 좁은지 아냐며, 한번 추락하면 끝이라는 대사도 뭐. 윤계상이 안을 잔뜩 들고가서 발표하자 복만치킨사장이 그거 다 한 장에 넣을꺼지? 그것도 꽤 힐러리어스! 패셔너블한 이들의 옷차림등을 보며 옷장이 똑같은 옷들로 가득 차 있다던 우리 국장님을 생각하지 않을수가. 배바지에 셔츠, 매일 갈아입는건지 아닌건지도 사실 모르겠었어. 똑같은 옷이 몇 벌씩 있다는 건 뻥일지도 몰라, 안 갈아입으셨을지도 모른다고. 휴 입술은 허옇게 각질이 뜨고, 눈은 퀭하고...
피티 때 사람들에게 풍선과 고무공을 던지며 이 많은 메세지를 다 담을 수 없는 게 광고라는 그 장면도 광고계에서는 꽤나 유명한 전설의 AE분의 일화. 
이런 광고바닥을 다루는 드라마 등이 나올 때마다 드는 마음은 좀 덜 멋지게 그려주면 좋겠다는 마음도 약간. 안 그래도 환상을 갖고 대학생들의 많은 비율이 광고회사를 지망하는데, 거기에 더 부채질하는 효과밖에. 
어쨌거나, 이 드라마의 백미는 다른 곳에 있었으니, 그건 광고주. 광고주가 정말 개새끼로 나오는데, 여자배우랑 저녁 먹고 싶다고 하거나, 온갖 진상은 다 부려놓고 돈 다 준다며 나같은 광고주가 어디있냐고 하거나 하는 것들은 물론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약간 극화되었긴 했지만 너무 웃겨서 자빠질 뻔. 집에 사모님 계시지 않습니까! 라고 버럭 소리지르는 제정신 놓친 AE 는 있을리 없지만서도 말야. 미친 게 아니고서야, 아니 미쳐도 못 하지.

어제 니야랑 술마시면서 얘기했거든.  
뻔해. 작가들과 피디들이 인터뷰를 한 거야, 광고바닥 사람들을 모아놓고 말야.  
그랬더니 이 사람들, 딴 얘기는 다 제쳐놓고 그저 광고주들에 대한 울분만 토해낸거야. 들어주는 사람만 있으면 그러거든, 그래서 이렇게 광고쟁이들의 한이 맺힌 광고주 캐릭터가 나오게 된 거지. 너무 대행사 편이네, 그래도 알게 뭐람. 아요, 웃겨서 떼굴떼굴 

암튼 이리하여 나는 오늘도 10시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계급, 직급, 직종 다 떼고 바싹바싹 말라가면서 하루에도 열번씩 바뀌는 윗분들 변덕 컨셉에 맞춰서 안 수십개씩 내고, 회의실 벽은 누덕누덕 빈 자리도 없이 꽉 채워지고, 그러다가 또 컨셉 바껴서 다 떼고 다시 짜고, 이랬다 저랬다 백번씩 왔다갔다, 안이 결정되고 편집실에 들락거리고, 녹음까지 끝내고. 그러나 이 순간부터 또 사고라도 생길까, 뭐 하나 바뀔까 마음 졸여가며 제발 수정만은, 제발 수정만은을 되뇌이다가, 간신히 리허설을 끝내고, 전부 피티장으로 떠난 다음 간신히 눈꺼풀을 지탱하고 있다가 피티가 끝났다고 전화가 온 후의 평온함. 그게 진짜 재미거든. 전쟁이야, 졸 재밌어. 결과는 별 상관없어. 혼방은 재미없어, 재미는 PT에 다 있어. 사실 고백하면 난 혼방이 싫어서 피티 붙는거 별로 안 바랐다. 
아, 피티 하고 싶다. 피티가 최고지. 
그립네.

 






by catail | 2009/07/01 14:45 | SMALL TALK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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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7/0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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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ceias at 2009/07/01 16:24
내 차마 오글거려서 본편은 제대로 못 보고 엔딩 크레딧만 유심히 봤는데
촬영 협조인지에 금강 오길비 뜨더라.
그 어중간한 묘사가 이해가 갈듯말듯.
Commented by catail at 2009/07/01 16:35
응 오글거려서 까는 재미도 좀 있지.
ㅋㅋㅋ
Commented by Tag at 2009/07/01 17:26
하앍하앍!!! 캐공감!!!
건축 쪽도 마찬가지야. 건축가만 드라마에 떴다 하면 무조건 외제차에 조낸 한가롭게 유유자적하고 다니고...(당최 어느 회사인 게냐?!! 사장도 그렇게는 몬 한다!!!)
Commented by Tag at 2009/07/01 20:52
나 설계하잖아. :)
Commented by catail at 2009/07/01 20:52
요새 건축가 나오는 드라마도 하잖아 결혼못하는남자인가 그거. ㅋㅋㅋ
Commented by Tag at 2009/07/01 22:50
ㅇㅇ. ㅋㅋㅋ 누가 그러더라. 일본판 결못남 옷 입는 거랑 성격만 닮았다고..ㅋㅋㅋ 비주얼은 전혀...OTL
Commented at 2009/07/0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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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catail at 2009/07/01 20:55
별말씀을...
이태워너 라는 단어는 제가 만들어 저만 쓰는 줄 알았는데. ㅋㅋ
챠오에 이태원거주를 원하신다니, 이런, 저랑 쌍둥이가 되겠는데요. 하핫 게다가 회사까지 관두시면.

챠오는 요즘 없더라고요, 기다리면 나올거에요. 상태좋은걸로 잘 고르셔야해요. 거의 고물이거든요. 근데 챠오, 디게 성가신 부분이 많아요. 시동 잘 안 걸리고, 언덕 절대 못 올라가고. 그래도 귀여우니 용서해야 하나 싶어요.
Commented at 2009/07/01 21:3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9/07/02 09:4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atail at 2009/07/02 11:27
신문사는 뭐 어쨌거나 화려와 거리가 먼데?
신문사가 화려할거라 생각하는 바보가 어디있답니까?
Commented by 쏘짱 at 2009/07/03 12:53
글게요.. 저도 남편이랑 트리플 보면서, 혹시나 저렇게 못된 광고주였나? 과거를 계속 곱씹었답니다.. (여자이니, 2차 갈 일은 없지만. 다니엘헤니를 보고싶다 촬영장에 데려가주면 안되겠냐, 한 적은 있었던 듯 --;)
Commented by ATOZ at 2009/07/08 10:26
그리고는 다시 전단지부터 시작한다라니 그나마 다행 (완전 넘어간다. ㅎㅎㅎㅎ)
Commented by 니야 at 2009/07/08 19:21
푸핫. 나도 PT하고 싶다. 그런 토나오는 바닥에 다시 돌아가고 싶으니, 나 어떡하니?
Commented at 2009/07/09 14:43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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